영월읍 영흥리에 위치한 금강공원 내에는 강원도문화재 자료 제24호로 지정된 금강정을 비롯하여 낙화암, 금강공원 수림지 등이 있다.
영월읍 영흥리 남한강의 상류 연안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에 세운 정자로 강원도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정자는 1428년(세종10년)에 김복향이 건립한 정자라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영월제영(한문)에는 군수 이자삼이 금강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리에 정자를 짓고 금강정이라는 이름을 달았다고도 한다. 금강정 아래로는 푸른 동강이 흐르고 있으며, 앞으로 보이는 계족산과 태화산이 절경을 이루고 있어, 1684년(숙종10년)에 우암 송시열이 그 절경을 바라보며 금강정기를 썻다고 전해온다.
정면 3간, 측면 3간익공계 양식의 건물로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처마는 겯처마에 팔작지붕이고 모로단청을 하였다.
금강정 위쪽 동강의 높은 절벽위에 있는데 1457년 10월 24일 단종이 관풍헌에서 승하하자 단종을 모시던 1궁노 10궁녀 그리고 시종들이 모두 이 곳 절벽에서 투신 순사하였다. 이들이 투신 순사할 때의 모습이 마치 꽃이 떨어지는 것 같가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단조의 시신까지 강물에 버렸다고 한다.
이곳 투신 순절한 자리에는 “낙화암”이라고 비문을 새긴 작은 비석이 서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으며 낙화암비 바로 옆에는 “순절비”라 새겨진 비석(약2m)이 서 있어 그 당시의 슬픈 일들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강물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호장 엄흥도가 몰래 건져서 동을지산에 암장하였고 이곳에서 투신 순절한 시종들에 대해서는 후일 민충사를 세우고 그 영혼을 제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두 곳의 낙화암이 있는데 그 하나는 백제의 수 많은 궁녀가 몸은 던진 부여의 백마강에 있고, 나머지 하나가 이곳 영월의 낙화암이다. 단종이 승하한 관풍헌에서 동쪽으로 600m 떨어진 금강정 절벽에서 동쪽으로 있는 마지막 절벽이 바로 낙화암이다.
금강공원내에 위치하고 있는 사당으로 단종 승하후 낙화암에서 강물에 몸을 던져 단종의 뒤를 따를 시녀와 시종등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민충사 앞에 자리잡고 있는 금강정에서 동쪽으로 암벽을 이루고 있는 낙화암이 있다.
1457년 관풍헌 처소에서 사약을 받고 단종께서 승하하시니 단종을 모시던 시녀와 시종들이 이 낙화암에서 몸을 강물에 던져 순절하니 당시 순절한 사람이 10인 또는 99인이라 전하기도 하고, 또는 현 장릉 경내 배식단에 모신 위패가 6위인 점으로 보아 낙화암에서 순절한 시종은 6인으로 보기도 한다.
민충사는 이 일과 관련하여 순절한 여인들을 모신 사당으로 1742년(영조18년)에 홍영보가 창건하고 1791년에 영월부사 박기정이 개축하였다. 사당내에 “英廟 壬戌命建詞 戊寅特賜額重修令 上十午年 辛亥改建 觀察使尹師國" (영묘 임술명건사 무인특사액중수령 상십오년 신해개건 관찰사윤사국)이란 기록으로 보아 이 사당은 조정의 명을 받아 건축하고 사액을 받은 사당임을 알 수 있다.
건물은 자연석 기단위세 전면 3간 측면 2간의 규모로 전면은 반간을 물려 각 간마다 2분합 띠살문을 달았다. 기둥은 자연석 주초위에 둥근 원주를 세웠다. 건물구조는 익공 계통의 양식을 따랐으며 지붕은 흩처마 맛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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